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어학실력을 향상 시킬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어학능력이 상승하는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것이 영어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영어에 익숙해지게 된다. 처음 이곳에 와서 생활하면서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1년이 조금 지난 지금은 확실히 처음보다 많이 영어를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데에 있어서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스스로 든다. (익숙함과 잘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는 있다.) 특히 듣기와 쓰기는 계속되는 코스웍을 통해서 강의를 듣고 과제나 에세이를 영어로 적고 제출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상승 폭이 있었던 것 같다. 말하기는 여전히 문제다 문제.
내가 속한 랩에서는 매주 연구실 미팅을 진행하고 매 주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research를 발표하도록 한다. 보통 발표시간은 짧으면 10분, 길면 20분 정도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매 학기가 시작할 때 마다 교수님께서 일정을 대략적으로 짜놓고 그 사람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따라 주제도 대략적으로 정해주신다. 최근에 내 차례가 되어서 영어 발표를 준비해야했다. 작년에 처음 연구실에 합류한 뒤에 석사논문주제를 가지고 발표한 적이 한번 있었다. 그 때는 한창 코로나가 심할 때라 줌을 통해서 했었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이 떨어졌는데, 현재는 강의실에서 in-person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연구실 동료와 교수님 앞에서 발표를 해야했다.
우선적으로 발표 내용들을 정리해서 slide로 구성하고 어떤 식으로 발표를 진행할 지 대략적인 로드맵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설명하고 이야기할지에 대한 대본을 준비하였다. 이 대본대로 읽고 연습하고 발표하려고 하지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발표하기란 어렵다. 발표하는 도중에 까먹을 수도 있고, 다른 단어를 내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발표를 해야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모국어가 아니고 아직 말하기가 어색한 만큼 연습, 또 연습만이 살길이였다.
발표해야할 내용을 정리하고 대략의 대본이 정리가 되면 대본을 읽어보면서 연습을 진행한다. 파워포인트의 presenter view를 사용하여 시간이 대략적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한다. 대본을 줄줄 읽으면 확실히 실제로 발표하는 것보다 시간이 짧기 때문에 실제로 발표시간은 좀 더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대본을 가지고 하는 발표는 대략 10번 정도 연습을 했다. 그러면 어느정도 머릿속에 흐름이 정리되는데 이 때부터 대본을 보지않고 연습을 진행하였다. ppt slide를 보면서 내가 사전에 짜놓은 흐름대로 진행하는데 각 ppt slide마다 내가 진행하는 발표의 guide가 되어 줄 단서들을 하나씩 넣어 놓는다. 그것을 보고 내가 다음 말할 내용을 떠 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대본없이 10번 이상을 연습하다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기억난다. 중요한 것은 눈 대중으로 대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을 해봐야 입에 익숙해지고 무의식적으로도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20번 이상 진행하고 나면, ppt를 보지 않고도 내용을 읊을 수 있도록 연습하는데, 하도 slide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들이 머릿 속에 남아있어 스스로 각 페이지를 연상하면서 연습을 진행해 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캠퍼스를 산책하면서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연습을 계속 진행했다. 대략 30번 이상의 연습을 진행하고 나니 발표내용을 까먹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할 때 약 5초간 백지상태가 되어서 멈춘 적이 있었다..ㅠㅠ. 그 이후 팍! 떠올라서 다시 잘 진행되었지만 말이다.) 이정도 연습하고 나니 슬슬 발표보다는 질의응답에 대한 부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먼저 질문을 잘 알아들어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답변할 수 있어야했다. 알아듣는 것은 내 능력껏 해야하는데, 답변 내용에 대한것은 어느정도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다. 계속해서 slide를 보다보면 어느 부분의 설명이 약한지, 어떤 개념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할 지, 사람들이 어느 질문을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한 뒤 나의 답변을 보충해줄 만한 슬라이드를 준비한다. 이러한 슬라이드도 발표내용만큼의 갯수로 준비하였다.
큰 문제 없이 발표를 진행 한 뒤에 7~8개 정도의 질문을 받아 알맞은 답변을 하고 발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발표 내용이나 발표를 진행하는 것에 있어서 지도교수님께서 만족하시고 이후에 문자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대략 오늘 들은거 좋았고 잘하고 있다는....)
다음 번에 발표할 때는 외운 내용을 달달 말하는 것이 아닌, 표현의 다채로움과 좀 더 자연스러움,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강약의 조절에 좀 더 신경쓰면서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준비부터 발표를 진행하는 것 까지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Practice makes perfect라고 연습하면 극복이 가능하고, 발표도 계속하다보면 발표 실력이 늘기 마련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원어민들도 발표할 때 긴장하는 모습이 물론 보이고, 상대적으로 나 같은 외국인들보다는 발표 연습을 덜 해서 그런지 중간에 갈길을 잃은 것 같은 상황을 여러번 보기도 하였다.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떤 연구를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내용을 구성하느냐라고 생각한다.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것을 들어보면 설령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악센트와 발음을 사용하면서 발표를 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 보고 어느 누구하나 발음이나 말하기 문제에 있어서 지적하는 것을 본 적 없다. 좋은 연구와 그 내용을 바탕으로 명간결한 내용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되, 좋은 발표실력을 가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면 될 것 같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음 번에 발표할 땐,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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